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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을 시작하려고 하는 당신에게

1. 왜 비건을 하세요?

14살 무렵, 처음 페이스북이라는 SNS를 접했다. 동급생 친구들과 교류하며.. 그렇게 페이스북만 들여다보며 지냈다. 하루는 치킨 썸네일의 광고영상이 떴고, 치킨 신제품인가 싶어 누른 그 영상은 내 인생을 거의 통째로 바꿔놨다.

 

썸네일의 치킨은, 살아있는 닭으로 되돌아갔다. 살아있는 닭이 도살장을 거쳐 ‘식품’으로 포장되고 ‘치킨’으로 튀겨지는 과정을 역으로 재생하는 영상이었다. 영상 속 비명과 붉은 피, 두 발이 컨테이너 벨트에 묶인 채 뒤집혀져 있는 닭이 곧 푸드덕거리던 날개짓을 멈추는 것을 보고 나서야 나는 치킨이라는 음식이 닭의 죽음임을 느낀 거 같다.

 

그날 밤 치킨을 먹었는데 한 입 물고나니 그 영상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라 먹을 수가 없었다. 사고는 닭에서 다른 동물들로 확장되어 나갔다. 식탁에 차려진 다른 동물들을 볼 때도 그 영상이 떠올랐다. 다 똑같겠지 싶은... 그렇게 동물을 먹지 않게 되었다.

 

나는 내가 채식을 하는지도 몰랐다. 당연히 주변에서는 나를 이상하게 봤고, 나도 내가 이상한 줄 알았다. 어쩌면 병인가도 싶어 병원에 가야하나 싶었다. 동물을 먹지 않은 지 몇 달 즈음 지났을 때, 엄마가 옆방에서 전화로 “요즘 우리 애가 채식을 해서 고민이야”라는 이야기를 했다. 채식! 나는 '내가 채식을 하는구나'를 그제야 깨달았다. 나 같은 사람을 부르는 명칭이 있어 기분이 좋았다. 어딘가에 있을 채식주의자를 생각하며 동지애를 느꼈다.

 

그맘때쯤 카카오톡에서 오픈채팅 서비스를 시작했던 거 같다. 혹시 싶어 찾아본 채식주의자 오픈채팅방, 무려 몇 군데나 있었다. 이방저방 들어갔다가 나와 가장 잘 맞다 싶던 하나의 방에 남았다. 나는 ‘락토오보’의 채식을 한다는 걸 그제야 알았고, ‘비건’이라는 채식주의자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나는 동물을 죽이기 싫었고, 소젖과 닭알은 ‘죽이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정란은 먹지 않았다...)

 

옥자가 상영됐고, 다시금 동물들이 처한 죽음의 현실을 절감했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할 테니까). 오픈채팅 방에서 비건인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소젖과 닭알을 먹는 건 뭔가 괜히 찔렸다. 아마 나도 소젖과 닭알이 ‘착취’라는 사실은 알았을 거다. 다만, 소젖과 닭알도 먹지 않게 되면 내가 밥 대신 먹던 빵도 먹지 못하게 되니까, 아마 그래서 알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거 같다. 여튼, 소젖과 닭알도 ‘착취’라는 이야기를 접하다가.. 닭알을 낳을 수 없는, 여성이 아닌 수평아리들은 생산가치가 없기 때문에 남성임이 판정되자마자 분쇄기에 갈아 버린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소젖과 닭알도 끊으려 해나갔다.

 

치즈를 끊는 게 가장 힘들었다. 치즈스틱을 끊는 게 가장 힘들었다. 그래서 치즈스틱을 빼고는 최대한 비건으로 살고, 치즈스틱을 먹는 주기를 늘려나가다 보니 어느 순간 비건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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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비건을 시작하려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큐 <What the Health(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를 보고나서 건강적인 측면에서 비건을 접하게 되었을 수도, 다큐 <카우스피라시>, <씨스피라시> 등을 보고나서 환경적인 측면에서 비건을 접하게 되었을 수도, 다큐 <도미니언>이나 게리 유로프스키의 ‘꼭 한번은 들어봐야 할 강연’을 보고나서 동물권적인, 윤리적인 측면에서 비건을 접하게 되었을 수도.

 

건강이나 환경의 측면에서 비건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유독 혼란을 많이 겪는 거 같다. 동물성인 무언가가 더 건강에 좋거나, 탄소발자국을 덜 만든다는 말에 흔들리는 거 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비건인 무언가는 동물을 죽이지 않는다는 것.

 

비건인 무언가는 “새끼돼지한테 마취도 시키지 않은 채 거세하지 않고” “마취없이 닭의 부리를 잘라내지도 않으며” “소를 강간시켜 임신시키지도 않고” “새끼를 낳은 소로부터 새끼를 빼앗아, 그 새끼가 먹어야 할 젖을 짜지도 않으며” “가죽의 신선함을 위해 살아있는 밍크의 살갗을 벗기지도 않는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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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근데 나라고 “왜 비건하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위 같은 이야기를 30분동안 프리토킹하지는 않는다. 그냥 “내가 너를 먹지 않는 거처럼 당연하니까”, “고기가 더 이상 음식으로 보이지 않고 누군가의 사체로 보여서” 라고 간단히 답하거나, 이마저도 귀찮은 날에는 “너는 왜 비건을 안 하는데?”라고 묻는다 (나한테 비건하는 이유 묻기전에 본인이 논비건인 이유부터...)

 

내가 이렇게 귀찮아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질문을 통해 얻은 답변을 바탕으로, 내게서 “너는 무결하지 않다”를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기 때문 (ex. 그럼 왜 식물은 먹니?)

 

다들 누군가의 질문에 답하는 데 너무 애써서 탈진하지 말고, 힘든데도 괜히 답하지 말고, 답함으로써 상대에게 자신의 신념의 무결함을 보이겠다는 책임감은 내려두자. 그냥 나는 나를 믿고 가면 되는 거 아닐까?

 

나는 아직도 비건의 건강에 대해 누군가 물으면, “그 영양소들 다 야채에도 있고 오히려 고기 먹으면 단백질 과잉이라 위험하대.” 정도밖에 답하지 못한다. 비건이 어떻게 환경에 더 좋냐 물으면, “가축동물들 키우려고 삼림을 다 불 태우고, 걔네 방귀의 메탄가스로 지구의 온도 오르니까.. 비건하면 좋겠다.” 정도밖에 답하지 못한다.

 

이렇게 대답도 잘 못하고, 아는 것도 별로 없는 내가 비건을 게속해나가는 이유는 아까도 말했듯, 내가 먹고 쓰는 비건인 무언가는 “새끼돼지한테 마취도 시키지 않은 채 거세하지 않고” “마취없이 닭의 부리를 잘라내지도 않으며” “소를 강간시켜 임신시키지도 않고” “새끼를 낳은 소로부터 새끼를 빼앗아, 그 새끼가 먹어야 할 젖을 짜지도 않으며” “가죽의 신선함을 위해 살아있는 밍크의 살갗을 벗기지도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고통을 없앨 수 있는 나비효과를 불러 일으키리라 믿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다큐멘터리 및 영상 링크

 

1. 수컷 병아리는 태어나자마자 분쇄기에 갈려 죽는 거 앎?ㅠㅠ /스브스뉴스

www.youtube.com/watch?v=UU7ca4Ooi4o&t=65s

 

2. What the Health -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

www.youtube.com/watch?v=NDj0aNdfRLQ

www.netflix.com/search?q=%EC%99%93%EB%8D%94%ED%97%AC%EC%8A%A4&jbv=80174177

 

3. 카우스피라시

www.netflix.com/search?q=%EC%B9%B4%EC%9A%B0%EC%8A%A4%ED%94%BC%EB%9D%BC%EC%8B%9C&jbv=80033772

 

4. 씨스피라시

www.netflix.com/search?q=%EC%94%A8%EC%8A%A4%ED%94%BC%EB%9D%BC%EC%8B%9C&jbv=81014008

 

5. 도미니언

www.youtube.com/watch?v=zqGFl2HIMXU (19세 인증 필요)

www.dominionmovement.com/watch (19세 인증 필요X)

 

6. 게리 유로프스키 - 꼭 한번은 들어봐야 할 강연

www.youtube.com/watch?v=71C8DtgtdSY&t=3s

www.youtube.com/watch?v=kx3CpHVdT0c&t=1s

 

 

인스타 @bevegan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