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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을 시작하려고 하는 당신에게

2. 어떤 단계부터 시작할까, 채식 (Chae-sik)

채식, 어렵지 않아요. 치킨 먹는 채식도 있다! 

 

최근 매스컴에서는 채식을 쉽게쉽게, 고기나 치킨을 먹을 수 있다며 폴로나 플렉시를 언급한다. 나는 매스컴에서 이런 방식으로 채식을 다루는 게 심히 우려스럽다. 일단 페스코나 폴로는 채식이 아닐 뿐더러, 비건이나 플렉시테리언 단어의 오용도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프레시코드

 

소젖을 락토라고 하고 닭알을 오보라고 하고 물살이를 페스코라고 하고 닭을 폴로라고 하고 그 외의 '고기'를 플렉시라고 하면 ... 대체 '단계채식'이 아닌 건 어떤 육류인가? 무엇보다도 플렉시테리언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논비건식단을 찾는 것이지, 굳이 의도적으로 "플렉시테리언"용 제품을 찾는 이들이 아니다. 평소에는 비건식단을 유지하되, 회식이나 가족모임 등의 불가피한 상황에서나 논비건식단을 찾는 것이지, 고기를 먹는 '단계채식'이나 식물성대체육을 기반으로 해 동물성 치즈나 소스를 올려먹는 이들이 아닌 것이다.. 즉슨 비건으로 출시된 것은 플렉시테리언도 먹을 수 있다!

 

비건과 플렉시테리언을 굳이 구분짓는 기사 내용 / bloter 김인경 기자

 

그리고 페스코(pesco)나 폴로(pollo)는 채식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채식주의자 협회에서는 "락토오보"의 단계까지를 vegetarian 이라고 규정했다. 해외에서는 페스코-베지테리언이 아닌, 페스코테리언(페스카테리언)을 주로 사용한다고 한다. 폴로도 폴로-베지테리언이 아닌, 폴로테리언.

 

https://vegsoc.org/info-hub/definition/

 

폴로 -> 페스코 -> 락토, 오보 -> 비건 순으로 "엄격해지는" 도표나 피라미드형 그림을 다들 한번쯤 봤을 거다. 일단 소, 돼지 등을 끊어 "폴로"가 되고, 닭을 끊어 "페스코"가 되고, 물살이를 끊어 "락토오보"가 되는 그런 단계채식(단계육식) 도표.

 

나무위키

 

나는 이 구조가 정말.. 이상하게 느껴진다.

 

나는 "물살이만 먹지 않는 채식"을 했던 적이 있다. 9살 무렵 아빠를 따라 간 수산시장에서, 꼬물거리는 물살이들을 보며 신기해했는데 이내 곧 그 물살이들이 칼에 내려쳐져 피를 흘리는 장면을 봤다. 그 순간의 충격에 꽤 오래 물살이 형체를 한 음식을 먹지 못했다. 칼에 내려쳐진 순간 피가 흐르고, 아가미가 토막났음에도 팔딱거렸던, 그리고 몇번이고 이어졌던 칼질이 '생선요리'를 보는 매순간 떠올랐기 때문이다. 쨌거나 당시의 나는, 어떤 동물을 먹지 않았음에도 위와 같은 분류표에 따르면 아무런 '단계'의 채식을 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러한 순서의 구조가 기묘하게 와닿을 수밖에.

 

그리고 선택적으로 끊을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고등학생 때 몇몇 학급 친구들이 나를 보며, 우유 대신 두유 아몬드브리즈 등의 대체유를 마신다고 했다. 고기도 먹는 걸 줄여나간다고 했다. 극단적으로 따지면 "우유만 먹지 않는 채식" 혹은 "닭만 먹지 않는 채식"은 왜 없을까. (그런 단계를 만들어나가자는 게 아니다. 그런 단계가 없듯, 단계에 연연하지 않으면 좋겠다.) 또한, 단계적으로 채식을 하는 게 아니라, 선택적으로 육식을 하는 거이기에 어쩌면 단계육식이란 말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단계채식과 요일채식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다른 육류"가 있고 "다른 요일"이 있다는 것이다. 환경 문제로 페스코로 '채식'을 시작한 친구는, 페스코니까 물살이는 '먹어도 된다'고 생각해 매끼하던 육식을 물살이, 새우로 대체했다고 한다. 오히려 당시가 인생에 통틀어 물살이를 가장 죽인 때라고 회고한다. 어떤 친구는 요일비건을 시작한다고 해놓고, 오늘은 비건데이니까 내일은 아침부터 고기 먹어야겠다고 이야기했다.

 

단계채식과 요일채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실제로 해 나가는 모습을 보니, 이제는 잘 모르겠다. 정말 진입장벽을 낮춘건가?

 

요즘 하는 고민은, 동물권을 생각해 "비건을 지향"하지만, 어떤 단계를 언급하는 게 적절한가? 이다. 동물권을 생각하며 비건을 지향해 나가는데, 언급하는 '단계채식'은 종차별에 기반했다는 생각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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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지금부터 비건은 충분히(당연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집에 쌓여있는 논비건 양념, 식품 처리도 문제이고 (오히려 먹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 당장 매일 끼니를 떼우던 논비건식을 비건식으로 한순간에 바꾼다는 건 정말정말 어려운 문제일 테니까.

 

나는 이제막 채식을 시작하려는 당신에게 두 가지의 방법을 권하고 싶다.

 

1. 비슷한 식품군 비건으로 대체하기

집에 냉동만두를 사놓고 먹었다면, 논비건 대신 비건인 진선채식만두나 채담만두 등은 어떨까. 닭강정 대신 소이후라이드, 논비건 레토르트 국 보다는 비건 레토르트 국, 논비건 라면 대신 비건 라면(맛있는 라면 비건, 채황, 정면, 야채라면 등). 비건 핫도그, 비건 피자빵도 있다!

 

2. 동물종과 관계없이 끊을 수 있는 것부터

단계에 얽매이기 보다는, 당신이 일단 끊어낼 수 있는 것부터 끊어내기를 추천한다. 내가 "물살이만 먹지 않는 채식"을 했듯, 내 친구들이 우유부터 끊어냈듯. 정말 "이거"는 당장 못 끊겠고 충분한 대체재가 없다 싶은 게 있을 거 같다(나는 치즈스틱이었다..) 그 부분에서 말고는, 점차적으로 동물을 착취해낸 걸 줄여나가는 걸 추천한다. 어느 순간 비건이 되어있지 않을까?

 

 

당신이 이글을 읽고도 단계채식, 요일채식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이게 더 효율적일 수 있고, 시작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덜할 수 있다. 다만 당신이 어떤 방식으로 채식을 해나가든, 육식전시는 지양했으면 좋겠다. 비건인 지인이 불편해하는 것보다도, 괜히 쟤가 먹는걸 보면 나도 먹고싶어 지는 게 사람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SNS에 게시한 논비건은 다른 이에게 육식을 권장하고, 그 폭력에 가담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작년 슬릭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한 질문-답변을 인용하고 글을 마치고 싶다.

Q. 슬릭님은 비건을 결심하고 실천하는 게 쉬우셨나요? 저도 다양한 이유로 육식을 줄이려는데 실천이 어려워요

A. 많이 어려워요 그치만 쉬워서 한 일이 아니에요

 

 

인스타 @bevegan21